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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 도쿄 올림픽이 바꿔 놓은 것들

by macrostar 2016.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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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제목은 일본 한정의 이야기다. 아메토라를 읽다가 재밌다고 생각한 부분인데 이 이야기를 하려면 우선 몇 가지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 


VAN의 이시즈 켄스케가 아이비리그 패션을 일본에 도입했는데 이 새로운 서양의 패션은 기성세대와 대립 되는 전후 세대 청년, 젊은이의 새로운 아이템이 된다. 새로운 사상도 그렇고 패션에 있어서는 더더욱 사람들의 입장은 꽤나 보수적이어서 입어 오던 걸 잘 바꾸질 않는다. 


하지만 젊은 이들은 이 새로운 옷을 입고 다녔고 그러므로 기성세대들은 그걸 반항의 상징으로 읽는다. 올림픽을 앞두고 긴자에서 어슬렁거리던 미유키 족을 쫓아내 버린 건 그런 맥락에 닿아있다. 학생은 학생복을 입어야 하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심지어 학생들의 아이비 패션 아이템을 파는 매장 출입을 금지 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사실 아이비 패션이라는 건 반항적일 것도 없고 그냥 평범하고 편한 일상적인 서구의 옷이다. 그러므로 VAN은 이 오해를 풀어낼 방법을 고민하게 되는데(이건 소비자의 확대라는 면도 있다) 그 기회가 바로 올림픽이었다. 이시즈 켄스케는 당시 주력 패션 브랜드의 대표로 올림픽 대표팀 개막식 유니폼 디자인을 하게 되었는데 블레이저를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도 반항의 아이템이라고 인식한 기존 세력의 반발이 꽤 있었다고 한다. 여튼 우여곡절 끝에 레드 컬러의 3버튼 블레이저, 화이트 코튼의 바지와 치마, 네이비/레드 스트라이프 타이, 화이트 모자와 구두로 구성된 세레모니 코스튬을 완성한다.



3버튼 블레이저라는 낯선 옷은(이런 레디 투 웨어는 맞춤 복 중심의 2버튼 수트와 맥락이 다르다) 당시 백화점 바이어들이 구입을 꺼릴 정도로 이미지가 좋지 않았는데 올림픽 개막식 중계가 진행되면서 이런 인식은 확 바뀐다. 일본팀이 입고 나올 거라는 거에 투덜거렸지만 개막식을 보니 온 세상 대표팀들, 특히 서구의 대표팀들이 거의 똑같이 생긴 옷을 입고 나오는 걸 목격하게 된 거다. 이건 순식간에 세계 상식에 맞는 옷이 되어 버렸고 바로 백화점 바이어들의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또 하나는 스니커즈다. 일본에서는 주쿠라고 부르는 고무 바닥에 캔버스 천이 덮힌 끈 운동화는 어린 학생들이 교외 활동을 할 때나 신는 어린이용 신발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런데 VAN의 디자인 팀들이 올림픽 선수단이 뭘 입고 다니나 관찰하다 보니 수많은 선수들이 그것과 똑같이 생겼는데 어른용인 캔버스 운동화를 신고 다니고 있는 거다. 꽤나 왜곡된 아이비 리그 패션을 전개하고 있던 VAN에서는 사실 로퍼 말고는 내놓고 있는 게 없었다. 


여튼 그걸 보고 이걸 출시하기로 결정했지만 공장에서는 이게 팔릴 리가 없다고 생산을 망설였다... 하지만 결국 1965년에 컨버스 척 테일러와 거의 똑같게 생긴 로우 탑, 하이 탑 두 가지 모델이 생산되고 공전의 히트를 쳤다. 



사진 찾기가 귀찮아서 그냥 아무 거나...


지금 봐서는 블레이저가 왜 반항의 아이템이었는지, 캔버스 운동화 생산을 공장에서 왜 망설였는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겠지만 이런 일은 생각보다 꽤 자주 일어난다. 인간은 오랫동안 사용해 오고 생각해 온 것에 대해 꽤나 보수적이고 그러므로 터무니 없는 반항을 한다. 그런 것들은 대부분 견문이 짧고, 생각을 깊게 해보지 않은 탓이다. 나중에 생각해 보면 바보 같은 짓을 했구나 라는 걸 깨닫게 될 뿐이다.


여튼 이 일화로 알 수 있는 또 하나는 그렇게 뭔가를 고수하려고 하면서도 패션에 있어서 뭔가 깨달음이나 시각적 충격이 오면 바뀌는 건 한순간이라는 거다. 이 이야기는 몇 번 한 적이 있는데 어떤 무언가를 새로 봤을 때 지금까지 입어왔던 게 극히 촌스러워 지고 그때까지는 생각지도 못했던 걸 찾아 나서게 되는 건 매우 흔한 일이다. 그 속도도 매우 빠르다. 이런 점이 패션의 사뭇 무서운 일면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데 여튼 새로운 트렌드의 쇼크가 바꿔놓는 세태 전환의 속도는 엄청나다. 1년 정도면 너무나 많은 게 변해 버리고 옷장을 보면 저걸 대체 어떻게 입었었지...의 수렁에 빠트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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