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머신 스톤워시

by macrostar 2016. 8. 13.
반응형

시덥잖은 이야기라 패션붑 텀블러(링크)에 쓰고 있었는데 좀 길어지길래 그냥 여기에 옮겨 놓는다. 어제 90년대 패션 리바이벌 이야기를 잠깐 하다가(링크) 오래간 만에 기계가 만든 스톤워시를 보니 나름 상콤해서 집에 있던 오래된 505를 입고 나왔다. 04년 11월 제조판... 얼룩덜룩한 인디고는 예상대로 즐겁다. 개인화가 좋다고는 하지만 리지드의 우울한 컬러가 지겨울 때도 됐지... 


그렇지만 큰 옷을 좋아하던 시절에 산 거라 너무 크다... 왜 그렇게 큰 옷을 좋아했을까. 무조건 제조사 권장 정 사이즈를 입어야 한다고 생각한 지 벌써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정 사이즈의 옷을 구입하고 그 옷을 계속 입기 위해 체형에 신경 쓰고 체력 관리를 하는 삶이 패션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건강함이라고 생각한다. 개인화라는 건 그렇게 계속 입을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어쨌든 혹시 근사한 머신 스톤워시 + 레귤러 + 테이퍼드가 없나 찾아봤더니 토미 진스 UO는 남성 라인이 나오지 않고 위 사진의 78년 판 501 레플리카가 있다. 78년 판에는 큰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는데 세부 사항을 보면 : 인디고 염색에는 석유 부산물 화학 물질이 들어가는 데 1973년의 1차 오일 쇼크에 이어 1978년에 이란에서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면서 전면적인 석유 수출 중단을 하게 되고 2차 오일 쇼크가 발생한다. 이로 인해 석유가 비싸지자 콘 밀스는 대신 설퍼(황)을 사용해 인디고 염색을 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인디고 염색의 색이 더 밝아지고 물도 더 잘 빠진다. 


그리고 핏 자체도 약간 더 슬림해 지고, 라이즈는 더 짧아졌고, 테이퍼드는 더 강해졌다. 뭐 이런 결과로 지금 나오는 청바지들과 거의 똑같은 모습이다. 아마 이런 특징을 담기 위해 별 큰 장점도 없는 78년 버전을 LVC에서 내놓은 게 아닐까 싶다. 뭐 컬렉터들에게 중요한 점은 뒷 주머니에 달려 있는 탭에 LEVI'S라고 대문자 E가 적힌 마지막 버전이라는 사실 정도다. 이후에는 LeVI'S라고 표기한다. 


석유 이야기가 가장 신기하군... 그렇다고 해도 뭐 이 정도 버전을 헤리티지라고 복각까지 만들고 그걸 240불이나 받고(링크) 파나 싶긴하다. 스톤워시 청바지에 대해서라면 어차피 가끔 기분 환기용으로 좋은 아이템이니 30~40불 정도 주고 505 레귤러 핏 정도 하나 가지고 있는 걸 권해 본다(링크).


이 머신 스톤워싱을 가지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몇 가지 있는데. 우선 자신의 몸과 행동에 따라 낡아간다, 함께 간다는 건 꼭 리지드 데님 상태에서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 아무대서나 시작해도 되고 아무대서나 멈춰도 된다. 물론 태초의 상태에서 시작하면 좀 더 명확한 발자취를 찾을 수 있겠지만 삶의 기록을 꼭 모두 옷에만 남길 필요는 없다. 구속될 필요는 없되 삶에 있어 작은 즐거움 중 하나로 대하면 될 일이다. 마니악한 취미를 가꾸는 거라면 물론 다른 길을 가야 하지만 평범한 사용자는 무슨 도 닦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까지 할 필요는 없다. 이런 재미가 있구나...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또 하나는 청바지가 한때 반항과 일탈의 상징이 된 이유는 청바지의 모습에 있는 게 아니라 그게 기성 세대들은 입지 않았던 옷이기 때문이다. 즉 옷이 반항성을 획득하는 건 형식의 결과가 아니다. 아무도 입지 않던 걸 세력화 해서 입는다가 핵심이다. 그런데 요새도 자유니 뭐니 하면서 청바지와 가죽 옷을 선택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는데(이런 걸 미사리 아저씨 계열이라고 개인적으로 부르고 있다) 사실 그것도 정말 웃긴 게 포멀 웨어라는 기존 질서에서 (한때는 아니었을 지 몰라도) 이제는 그저 또 하나의 평범한 질서가 된 청바지와 가죽 옷으로 단순히 이동만 할 뿐이다. 그러고선 똑같은 짓을 한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보면 청바지는 자유~ 젊음~ 이런 분들이 형 동생은 또 엄청나게 따지는 모순 속에 들어가 있고 나올 생각도 별로 없다. 이런 거야 말로 너무 낮은 레벨의 기믹이다. 


그러므로 굳이 옷으로 반항을 하고 싶다면, 지금 시점에서는 매우 효용성이 낮은 행동이지만, 없는 걸 - 이제는 아무도 안 입는 걸 - 찾아 내는 게 맞다. 하지만 거의 전 범위의 역사 속의 옷들이 쉴 새 없이 리메이킹, 리브랜딩 되고 있기 때문에 아쉽게도 입을 수 있는 것 중 그런 건 거의 없다. 머신 스톤워시는 지금 시점에서 보자면 반항도 히피도 뭣도 아니고 찾아보자면 옷에 별 관심이 없는 기성 세대의 희미한 컬러다. 갑자기 하이 패션드 되고 있는 경향이 있긴 한데... 그래도 잠깐이라도 옷으로 장난을 쳐보고 싶다면 차라리 이런 거나 코듀로이 같은 게 더 재미있을 거 같다.


PS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깨달았는데 내 개인적인 취향은 리지드 -> 페이드 상태보다 고온 건조기나 약품에 의해 균일하게 하늘색이 되는 거 같다. 뭐 그냥 그렇다고...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