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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의 즐거움

딱히 패션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by macrostar 2017.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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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청바지 이야기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여기저기 흩어서 해 놨는데 날씨도 좋은 김에 정리해 본다. 여름이 오늘만 같으면(화창하고, 바람이 불고, 습하지 않다) 정말 좋을텐데. 아무튼 왜 청바지 이야기를 꾸준히 하고 있나.


우선 공산품이라는 건 재미있는 점이 많다. 우선 대량 생산 만이 내는 분위기가 있다. 축약되고 압축되었지만 상품으로 가치를 가지고 옷으로의 가치를 가지기 위해 있어야 할 건 반드시 있고 제대로 챙긴다. 물론 테일러드, 비스포크 청바지도 있고 그런 걸 오트 쿠튀르가 아니라 청바지에서도 선택하는 걸 폄하할 생각은 없다. 체형이나 취향이라는 건 가지고 있는 게 중요하고 또 그걸 가벼운 마음이지만 대신 꾸준히 파고 들어가는 게 즐거운 법이다. 


어쨌든 이 대량 생산과 기계의 냄새라는 건 만들어 진 청바지 구석구석에서도 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개개인마다 다 다른 체형을 가지고 있는 몸의 생김새를 무시하고 있다. 결국은 옷에 맞춰가야 한다. 그런데 이건 데님이라는 섬유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 옷감은 세탁하면 1인치 쯤은 줄어들고 또 잠깐 입으면 1인치 정도는 늘어난다. 압력이 받아 늘어난 부분과 그렇지 않아 가만히 있는 부분이 만나 예측할 수 없는 불균형이 만들어진다. 사실 말도 안되는 옷감이고 그걸로 만든 바지라는 거 역시 말도 안되는 옷이다. 


또한 이건 말하자면 부품이다. 로트 번호로 되어 있는 분류가 그걸 말해준다. 뭐 그런 게 맘에 안들어 이름을 붙인(예컨대 Mango) 청바지들도 있는데 역시 어울리지 않는다. 옷에 왜 이름을 붙여. 여튼 이건 작업복에서 나온 만큼 청바지의 숙명이다. 이건 패션 vs. 패션에서 약간 이어지는 이야기인데(링크) 패션이 지겹고 그에 지배 받고 극복하고 있지 못하다면 스타일을 찾는 복잡한 길보다 옷을 부품처럼 대하는 방법도 있다. 오래된 도구를 취급하는 방식으로 옷을 대하는 거다. 


청바지라는 건 이에 적합한데 로트 번호로 분류할 수 있고 면 + 철 + 구리로 만들어져 있다. 염색된 인디고마저 꼬인 실 중 하나만 되어 있고 겉만 둘러놓은 거라 슥슥 빠져나간다. 이것들 모두 서서히 낡아가고 게다가 청바지는 이왕 낡아도 입을 수 있는 옷으로 사회적으로 허락되어 있다. 딱히 사회의 고정 관념과 싸우지 않아도 된다. 


물론 이런 류, 즉 오래 사용할 수 있고 전통적인 소재를 사용해 낡아가는 제품들은 청바지 외에도 여러가지가 있다. 


울 제품 - 관리가 어렵다. 경탄할 수준의 복구력을 보여주지만 세월의 티가 굉장히 은근하게 난다. 또한 빳빳했던 부분이 흐물거리게 된 후엔 복구가 어렵다. 그리고 여름에는 못 입는다. 


가죽 제품 - 역시 재미있는 구석이 있다. 처음 구하기에 비싸다. 경년 변화는 청바지보다 훨씬 두드러지고 역시 낡아도 입을 수 있다는 사회적인 허락을 맡은 품목이다. 하지만 이 역시 여름에는 못 입는다. 그리고 한 가지 제품으로 초봄, 늦가을과 한 겨울을 소화해 낼 수 없다. 


티셔츠나 버튼 다운 셔츠 - 티셔츠도 재미있다. 최근엔 레플리카 회사들이 여러 헤비 온스 티셔츠, 구형 제작 방식을 사용해 만든 티셔츠 등을 내놓고 있다. 레플리카 청바지를 제작 하면서 구형 셔틀 룸을 다시 가동하기 시작했고 그런 김에 비슷한 다른 종류를 가져다가 이것 저것 만들고 있는 거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하이 엔드 패션도 그렇고 레플리카 패션에서도 티셔츠는 중요한 수입원이 될 수 있다. 아무래도 접근이 쉽고, 누구나 쉽게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청바지에 이어 셔츠, 티셔츠, 면 재킷(주로 밀리터리나 워크웨어)을 만들었고 "경년 변화를 즐겨보세요" 같은 수식어를 달고 마켓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수명이 짧다. 그리고 저렴하기 때문에 더 구입하는 길을 택하는 게 더 쉽다. 물론 버튼 다운 셔츠 같은 것들, 특히 플라넬이나 데님, 샴브레이나 리넨 등으로 만든 워크웨어 계열은 충분히 오랫동안 사용이 가능하다. 이 종류 역시 추천한다. 문제가 있다면 역시 겨울에는 문제가 있다. 두꺼운 셔츠와 얇은 셔츠는 혼용이 좀 어렵다. 


워크 재킷도 마찬가지다. 가죽 재킷과 함께 이런 종류의 옷은 가장 멋지지만 한국에서 정말 쓸모없는 옷이 되어가고 있는데 10월 초까지는 더워서 입을 수가 없고 11월의 어느 순간을 지나치면 추워서 입을 수가 없다. 결국 입을 수 있는 날이 1년에 한 4주 정도 밖에 안되는 거 같은데 그것도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 


그러므로 트레이닝에 좋은 건 역시 청바지다. 다른 건 그 후 찾아가면 된다. 


청바지라는 건 라면과 비슷한 면이 있다. 다들 경험치가 매우 높지만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산다. 그렇지만 작은 차이에도 민감하다. 그러므로 예전에 좋았던 경험이 있다면 똑같은 걸 다시 찾지만 찾기는 어렵다. 이미 사라져 버린 회사일 수도 있고 같은 회사지만 그런 제품을 더 이상 내놓지 않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꾸준히 나오는 걸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또한 많은 레플리카 업체들이 있지만 예전에 나오던 걸 그대로 다시 만드는 일은 어렵다. 당시의 1, 2차 산업 환경 그리고 당시 현장에서 굳어 있는 관행, 또 작업자들이 담고 있는 우연 등등은 처음에 한 사람들이야 별 생각이 없었겠지만 그걸 그대로 다 복원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드님의 하야시 요시유키도 "리바이스를 똑같이 만들어 내는 건 환상일 뿐, 하지만 돈이라면 좀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어쨌든 이건 패션이 아니다. 대신 다른 척도가 있다 : 완성도 / 시각과 촉각 / 페이딩 / 수선 / 최종 결과물(지향점에 잘 도달했는가, 뭐가 문제였나) 등등등. 즉 자동차나 공구 혹은  다마고치, 애완물, 친구 같은 사물이다. 그리고 부과적으로 잘못된 습관을 파악하고 바른 자세를 유지하고, 허튼 짓을 하지 않는다는 등의 부과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로에서 페이딩이 완결될 때까지 입는 걸 “갈아넣는다”라고 하는 데 차칫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모습을 만들어 내면 실망스러울 수 있다. 물론 그런 실수를 안고 있는 게 또한 인생이기도 하다.


아무튼 그래서 청바지 이야기입니다. 다들 한 번은 해보자고요. 같이 갑시다! :-)



사실 이런 모습까지 되는 걸 지향하는 데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어떻게 저렇게 찢어진 곳도 없고 닳은 곳도 없게 저 색이 될 때까지 사용할 수 있었을까(자세히 보면 오른쪽 사이드에 수선의 흔적으로 보이는 게 있긴 하다). 몇 번 시도했지만 다 어딘가 찢어지고 이상한 이물질이 튀고 하며 실패했다. 심지어 게찜 국물이 쏟아져 냄새가 절대 안 빠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저렇게 까지 페이딩 된 사진을 보면 약간 경탄하게 된다. 참고로 밑단 뜯어지는 게 싫고 그게 바지의 수명 단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생각에 몇 년 전부터 신발에 닿지 않는 정도로 밑단을 맞춰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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