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디올의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와의 인터뷰 기사가 보그에 실렸다(링크). 간단히 요약하자면 지금까지의 디올이 페미니티의 브랜드였다면 지금은 피메일 임파워먼트의 브랜드여야 한다는 거다. 샤넬이 데모 코스프레 같은 걸 한 적이 있지만 대형 디자이너 하우스가 이렇게 여성 디렉터 - 페미니즘으로 포지셔닝을 한 적은 없었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으니까 이걸(링크) 참고.
이건 예컨대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는 이야기와 같은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디올이 그걸로 돈을 만드나 보다가 아니라 왜 돈이 된다고 치우리가, 디올이, LVMH가 생각하고 있느냐다. 즉 60만원 짜리 페미니즘 슬로건 티셔츠 같은 건 시선을 끌기에 좋긴 하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중요한 건 디올이 지금 뭘 하고 있느냐다.
몇 번 말했듯 수많은 여성 종사자가 옷을 만들고 수많은 여성 소비자가 옷을 구매하는 시장이지만 지금까지 여성은 하이 패션에서 보조적 존재였다. 즉 누군가 돈을 벌어 옷을 사주거나, 자신의 분야 안에서 입지를 유지하기 위해 코스프레를 할 필요가 있거나, 파티의 호스티스 역할을 하거나 뭐 그런 것들이다. 세상이 요구하는 여성상을 만들어 내고 그게 아니면 뒤쳐진다고 느끼도록 마케팅을 해왔다(링크). 그런 시대가 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사실 00년대, 10년대에도 그런 시장은 멀쩡하게 잘 돌아가고 있었고, 사실 지금도 많은 곳에도 돌아가고 있다.
그런 것들이 패션의 정체를 만들어 냈다. 어느덧 다들 고만고만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다 저런 고만고만한 세계관 아래에서 옷을 내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런 상황에서 프라발 그룽은 이민자 문제와 인종 문제에, 디올은 페미니즘에 포지셔닝을 하고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어 내고 있다. 위 링크의 칼럼에서 말했 듯 새로운 경험은 새로운 미감을 만들어 낸다. 비로소 비싼 돈을 주고 남들의 보조 역할이나 하려는 옷의 시대를 끝내려는 거다. 즉 LVMH나 케링 등등은 지금 시장을 새롭게 만들려고 하고 있다. 방향은 약간 다르지만 못생긴 옷들, 고프코어, 스트리트 패션 등도 노리고 있는 건 마찬가지고 한 배를 탄 많은 것들이 서로 얽혀 있다.
물론 이건 꽤 큰 작업이고 그러므로 지난 시절의 사고와 권력 구조 아래 존재하던 문제점들을 다 해결해야 한다. 모델에 관련된 법안, 이번 성희롱 / 성폭력에 관한 법안 등에 있어서 LVMH 같은 회사가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건 그런 이유일 거다. 하지만 이런 재편성은 모델, 사진 작가, 잡지사 등을 넘어서면 LVMH 등의 대형 회사들 그리고 하이 패션 신 자체를 향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때 어떻게 움직이고 그걸 어떻게 넘어서느냐가 앞으로 중요한 초점이 될 거다.
어쨌든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이 변화의 시작에 치우리 같은 디자이너가 있고, 맨 위 기사에서 나왔듯 꿈조차 꾸지 않았던 자리(디올에 여성 디렉터가 들어간 적이 없으니)에서 예전의 디올이면 하지 않았을 걸 하고, 만들지 않았을 옷을 내놓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 시즌 만에 끝나버린 랑방과 지금의 지방시가 조금은 아쉽다. 디올과 함께 이 길에서 엎치락 뒤치락 할 수 있다면 좋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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