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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들은 상상력이 어지간히 풍부하다고 해도 간접 학습으로 깨닫기가 무척 어렵다. 사람마다 얼굴 생긴게 다르고, 어깨 모습이 다르고, 배가 나온 정도가 다르고, 다리의 휨 정도와 길이가 다르다. 생각하는 게 다르고, 지향하는 바도 다르고, 옷을 입는 목적도 다르다. 머리 속으로 생각한 게 다르고, 나오는 결과가 다르다. 그러므로 보고 들은 것들을 자기 몸에다 직접 대 보고, 그걸 입고 밖에 나가보는 방법 말고 딱히 별다른 수가 없다.
그러므로 하루라도 더 빨리, 하루라도 더 많은 엄한 것들을 시도해 봐야 그 결과를 느낄 수 있다. 이런 것들은 차후의 학습과 경험이 주는 깨달음 등과 결합할 거고, 그때 했던 짓들이 나중에 부끄러울 지라도, 지금 무엇을 부끄러워할 것인가를 알 수 있게 하는 이정표가 되어 준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젊을 때 무성애자처럼 살다가 느즈막히 이성의 즐거움을 깨닫고 한심한 짓을 마구 해대는 어떤 이들처럼, 희안하고 괴상한 길에 그것도 큰 자기 만족을 안고 들어설 위험이 있다.
여튼 이런 것들은 오직 순진하고 순수하고 열정만 넘치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제 막 패션지를 탐독하기 시작하고 커뮤니티를 들락거리기 시작했음에도 세상 이치를 어느덧 순식간에 다 깨닫고 도인의 풍모를 뽐내며 돈오의 길에 접어들었다면 그런 이들이야 뭐 벗고 살아도 할 말은 없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지금 시대에 이런 이들에게 주어진 인덱스는 패션지와 커뮤니티, 그리고 그 모두를 포함한 인터넷이다.
특히 패션지는 인쇄되어 나와 방 구석에 쌓아놓고 언제든 들춰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패션에 관심이 있다면 그것을 가장 자주 접하게 되고, 이윽고 패션 뿐만 아니라 다른 이성적 활동을 구성하는 재료를 만들어주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것들 대부분은 부끄러움을 미리 알려주려 하지는 않는다. 요즘 들어선 오히려 부끄러움을 가능한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는 듯 하다.
패션쇼장 앞의 우리나라 스트리트 사진이 훨씬 재미있지만(링크) 내가 찍은 것도 없고 마구 올리기엔 초상권 등 여러 문제가 있을 수 있으므로 피티 우오모 스트리트 사진으로.
그러다가 회사에 들어가 제 풀에 지쳐 패션을 잊고 평범한 삶을 영위하기 시작하면 새로 성장해 호기심에 매장을 기웃거리는 다음 고객을 맞이하면 된다. 그들은 어차피 긱 사이트나 주부 사이트에서 그 나이를 둘러싼 새 아이콘들을 찾게 되겠지. 그렇게 계속 뒤로 뒤로 미루게 된다.
결국 저게 대체 왜인지 뭔지도 모르겠는 이 드러내고 침흘리는 개 프린트가 붙어있는 티셔츠나 계속 팔면 되는 거고 또 계속 팔리는 거다. 트렌드라는 이름으로 '어차피 지금 이 옷들은 지나가는 것들'이라는 작은 양심을 가슴팍 한 군데에 묻어두고 그 위를 셀렙과 패션의 화려함으로 덮는다. 이런 것들은 물론 옷장사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상업지의 사명이자 대기업에 의해 돌아가는 자본주의의 속성이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어떤 선이 있었지 않나 하는 (고리타분한) 생각을 잠시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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