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 가공의 기술은 점점 더 정교하고 완벽하고 그럴듯해지고 있다. 랄프 로렌의 유즈드 워싱도 있고 카피탈이나 보디처럼 낡은 창고에서 꺼내 고쳐서 쓰는 콘셉트를 밀어 붙이는 곳들도 있다. 그리고 깨끗한 라벨과 방습재가 들어 있는 비닐 포장, 빳빳한 케어 라벨과 품질 보증서, 각종 설명서가 실제 빈티지와 구별할 수 있는 경계를 만들어 낸다.
중고, 빈티지 제품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실제로 이렇게 낡은 옷들을 종종 마주치게 된다. 그러다 어느 시점을 넘어서면 이 실제 사용감과 우연이 만들어 내는 낡음이 패션으로 받아들여진다. 과거에 만들어 진 좋은 품질과 희소성은 이렇게 결합이 되고 또 시간이 지나면 점점 더 과격하고 극복 불가의 것들이 패셔너블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위는 takamama에서 캡쳐, 아래는 anitube에서 캡쳐.
어처구니 없음을 동반하지만 그런 건 이미 빈티지 가공에서도 만나고 있고 심지어 현대 패션은 어처구니 없음을 꽤나 밀어붙이고 있기도 하다. 바로 앞에서 말한 크록스와 어그 이야기(링크)에서 볼 수 있듯 이미 정상적인 상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
물론 그냥 낡고 찢어짐은 섬세한 스타일링 실력을 요구하고 여기에서도 경계석이 등장한다. 위 타카마마의 찢어진 티셔츠에서는 에르메스의 브라스 벨트가 아래 아니튜브의 찢어진 데님 커버올에서는 롤렉스가 균형의 방식으로 동원된다. 빈티지와 빈티지 가공 사이에서 단품끼리는 구별의 방법이 흐려지고 있지만 입는 사람의 맥락이 경계를 만들어 내고 이렇듯 헌옷, 낡음과 패션, 와비사비의 경계에는 아직은 장치가 필요하다. 물론 꼭 저런 장식품이 아니더라도 연예인, 유명인 등 특정 인물이 그 역할을 해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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