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켓

에디 바우어의 카라 코람 파카

by macrostar 2016. 3. 15.
반응형

에디 바우어에 카라 코람(Kara Koram)이라는 파카가 있다. 시즌 별로 컬러가 다양해 지기도 하고 그러는데 지금은 겨울이 끝난 시즌이라 그런지 홈페이지에는 블랙 모델 한 가지만 있다.



1953년에 나온 오리지널 모델과 비교하자면 목 부분이 좀 바뀌었고 요즘 제품은 700필 구스 다운이다. 여튼 이 파카 이야기를 해 보자면 우선 찰스 스니드 휴스턴이라는 분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찰스 스니드 휴스턴은 1913년 생으로 뉴욕 출신이다. 하버드를 나와 컬럼비아에서 의학 박사를 받았다. 어쨌든 이 분은 아버지와 함께 알프스를 오른 후 캐나다와 알래스카에 있는 각종 산을 오르기 시작했는데 점점 더 전문적인 수준으로 발전을 했다. 특히 1934년 알래스카에 있는 포레이커 산(5,304m)을 최초로 등반한 산악인이기도 하다. 


그의 히말라야 도전은 1936년 시작되었고 1938년 K2가 있는 중국과 파키스탄 국경 지역 카라 코람에서 K2에 도전한 최초의 미국인이 되었다. K2는 1902년 오스카 에켄스타인과 얼레이스터 크롤리가 최초로 등반을 시도하여 5차례 도전하였으나 모두 실패했고 그 이후로도 다들 실패해 아무도 올라가 본 사람이 없는 산이었다. 여튼 1938년 K2 도전은 실패했는데 정상을 올라갈 루트 지도만 그리고 내려왔다. 


이런 저런 히말라야의 다른 봉우리들을 올라가보다가 1953년 K2에 다시 도전하기로 하고 팀을 꾸린다. 이때 미국인이 7명 포함되었는데 그 중 3명이 시애틀 출신이었다. 등반 준비를 하면서 이들은 시애틀의 유명한 아웃도어 브랜드 에디 바우어에 극한의 날씨에 적합한 파카 제작을 의뢰한다. 



그래서 나온 게 카라 코람 파카다. 




사진을 찍은 피트 쇠닝도 등반 대원이다. 이렇게 8명(영국인이 한 명 포함되어 있다)이 K2에 도전하게 된다. 이름하여 아메리칸 카라 코람 탐험대. 위 사진을 보면 에디 바우어의 카라 코람 파카를 입은 대원들을 볼 수 있다. 이 등반대는 7000m 대까지 올라갔지만 일주일간 계속된 눈보라로 더 나아가지 못했고 대원 아트 길키는 혈관 염증으로 걸을 수가 없게 되었다. 나머지는 기사를 옮겨보면(링크


8월 10일, 그들은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원정대는 길키 씨에게 마취약을 투여하고 침낭으로 감싼 뒤 천천히 끌고 내려갔다. 몇백 m 내려가는 데 6시간이 걸렸다. 오후 3시경 원정대는 자신들이 산을 올라갈 때 텐트를 쳤던 캠프7에 도착했다. 그때 한 대원이 발을 헛디뎌 미끄러지면서 대원들의 밧줄이 서로 엉켰다. 원정대 전체가 얼음 절벽 속으로 떨어질 위기에 처한 것. 하지만 맨 위쪽에서 길키 씨의 침낭을 바위에 묶어 놓고 등산용 얼음도끼로 자신의 몸을 고정하고 있던 피트 씨가 밧줄을 바위와 자신의 몸에 묶어 당기는 사투 끝에 원정대의 목숨을 구했다. 그날 저녁, 원정대는 안전한 곳에 텐트를 치기 위해 길키 씨의 침낭을 밧줄과 얼음도끼로 고정해 놓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하지만 그들이 돌아왔을 때 길키 씨는 없었다. 갑작스러운 눈사태가 그를 휩쓸어간 것인지, 다른 동료들을 살리기 위해 길키 씨가 스스로 밧줄을 풀어 자신을 희생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이렇게 한 명이 희생되고 이 등반은 실패한다. 참고로 아트 길키의 시신은 1993년 K2 남쪽 빙벽이 녹으면서 발견되었다. 이 등반을 끝으로 찰스 스니드 휴스턴은 전문적인 등반은 하지 않게 된다. 이후 K2를 최초로 올라간 건 1954년 아르디토 데시오가 이끄는 이탈리아 등정대 중 리노 라체델리와 아킬레 콤파그노니가 된다. 당시 1938년 찰스 휴스턴이 최초로 K2에 올랐을 때 만든 지도를 사용했다고 한다.


뭐 이런 역사가 스쳐 지나가 있는 파카다. 물론 굉장히 못생겼는데(링크) 에디 바우어가 원래 다 그렇고 그런 재미로 입는 옷이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