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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라호마의 벨 스타

by macrostar 2016.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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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스타의 본명은 마이라 메이블 셜리 리드 스타다. 어렸을 적엔 메이 셜리라고 불렀다. 미주리 주에 있는 카시지라는 곳 근처 목장에서 1848년 2월 5일에 태어났다. 1860년 벨 스타의 아버지는 목장을 팔고 카시지로 들어갔고 여관 겸 말 보관소를 사들여 영업을 했다. 메이 셜리는 카시지 여성 아카데미를 다니며 피아노를 배우는 등 전통적인 교육을 받았다.


1863년에 남북 전쟁이 발발하고 더 유니언(연방군, 북군)이 카시지를 공격하면서 이 가족은 텍사스 주의 신(Scyene)이라는 곳으로 이주한다. 여기서 메이 셜리는 미주리 주 출신의 여러 범죄자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 중에는 제스 제임스(갱단)와 더 영거 브라더스(콜, 짐, 존, 밥 이렇게 4명, 갱단)도 있었다. 이들은 어렸을 적 미주리에 있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여튼 메이 셜리의 오빠인 존 셜리는 더 컨페더러시(맹방군, 남군)의 동조자였다. 존 셜리는 1864년에 맹방군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집에서 밥을 먹다가 포위한 연방군에 의해 사살당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메이 셜리는 역시 미주리 주에서 이주해 온 어렸을 적 친구 짐 리드와 결혼을 하고 애도 낳는다. 메이 셜리는 스타일이 꽤 좋았는데 블랙 벨벳으로 만든 라이딩 해빗에 깃털을 단 남자 모자를 쓰고 금 귀걸이를 했다. 엉덩이에는 탄약줄을 걸치고 두 개의 총을 메고 말을 타고 다녔다.




왼쪽이 벨 스타. 라이딩 해빗은 이런 옷이다. 궁금하면 여기(링크).


남편인 짐 리드는 범죄자가 되었고 아칸소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으로 지명 수배가 된다. 그래서 1870년 이 가족은 캘리포니아로 이주를 하게 된다. 나중에 텍사스로 돌아오는 데 돌아와서도 짐 리드는 계속 범죄를 저지른다. 농장일을 좋아했지만 가만히 있으면 좀이 쑤셔서 버틸 수가 없는 타입이었다고 한다. 메이 셜리의 친구들인 제스 제임스와 더 영거 브라더스도 이런 범죄를 함께 한다. 그러다가 1874년 별 다른 증거가 없었지만 마차를 훔친 혐의로 체포 당하고 파리, 텍사스에서 죽는다.


남편이 죽고 3주 뒤에 콜 영거의 삼촌 찰스 영거와 결혼했다는 소문이 있는 데 확실하진 않다. 또한 첫 번째 아이인 펄 리드가 사실은 콜 영거의 아이라는 소문도 있는 데 이 역시 확실하진 않다. 어쨌든 1880년 메이 셜리는 체로키 인디언 샘 스타와 결혼하고 인디언 자치구에 정착했다. 


여기서 벨 스타는 가축을 훔치는 법, 말을 훔치는 법, 주류 밀매를 배운다. 그리고 이때부터 벨 스타는 갱단의 퀸이 된다. 이게 수익성이 매우 좋았고 동료 중 누가 잡혀가도 보석금을 내고 풀어올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벨과 샘 부부는 말을 훔치다가 잡혀서 디트로이트에 있는 감옥에 9개월 간 수감당한다. 여기서도 샘은 말썽이나 피우다가 더 힘든 노동을 하게 되었지만 벨은 제소자의 귀감이 되어 감옥 간호사의 리스펙트를 받기도 했다. 이런 거야 뭐 전설의 일부니까... 1886년 또 다른 범죄 혐의를 받고 수배 중이던 벨 스타는 탈출했지만 샘 스타는 보안관 프랭크 웨스트와 총격전 끝에 둘 다 사망했다. 남편의 죽음과 함께 벨 스타의 갱단 퀸 시절의 피크도 끝이 났다. 


하지만 벨 스타는 인디안 보호구 안에 거주지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15살 연하의 샘 스타의 친척 짐 스타와 결혼을 한다. 1886년부터 벨 스타의 생애 마지막 2년은 잭 스피냐드, 짐 프렌치, 블루 덕 등 많은 갱단과의 가십, 스캔들로 쌓여 있다. 그리고 1889년 집에 돌아오다가 매복해 있던 자들에게 샷건을 맞아 살해당했다. 


벨 스타와 마지막으로 춤을 춘 프랭크 이튼(링크)에 의하면 에드가 왓슨이 춤을 추자고 했지만 벨 스타는 거절했고 그가 쫓아가서 살해했다고 한다. 에드가 왓슨이 플로리다에서 현상금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말을 훔치다 잡혔지만 벨 스타가 전혀 변호하지도 보호하지도 않은 아들이 범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여튼 이 사건은 목격자도, 용의자도 없이 미해결 사건으로 끝이 났다. 

  

말을 타고 총을 쏘려면 바지를 입는 게 편했겠지만 미국에서 여성의 바지 착용이 보편화된 건 훨씬 뒤의 일로 2차 대전 때 지역에 남은 여성들이 군 보급품 생산을 위해 공장 노동자로 소집되었을 때 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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