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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의 즐거움

벨트 이야기, 유니클로

by macrostar 2018.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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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약간 괜찮은 청바지용 벨트를 구입해 줄창 쓴 적이 있는데 10년 쯤 되던 어느 날 똑 하고 부러져 버렸다. 끊어졌다고 말하기도 그런 게 정말 똑 하고 가운데가 부러졌다. 그 이후로 벨트에 대한 열망이랄까... 그런 게 좀 사라졌다.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실험과 적용, 재배치를 게을리 하지 않는데 이렇게 안정적 운용을 하다가 좌절을 겪고 나면 의욕이 사그라든다. 


아무튼 이후 동생이 선물로 준 프레드 페리 패브릭 벨트를 오랫동안 쓰다가 그래도 가죽으로 된 게 하나는 있어야겠기에 몇 년 전에 아마존에서 존 바바토스 염가형을 운송비까지 11불에 구입해서 사용해 왔다. 하지만 그게 좀 쓰레기다...



가운데 세 개 중 왼쪽 게 바바토스다. 이건 양면을 붙인 건데 쓴 지 몇 개월도 되지 않아 가운데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후 본드로 붙였는데 그렇게 몇 개월 지나 다시 벌어졌다. 뭐 계속 땜빵해서 쓰는 것도 끊어지지만 않는다면 나쁘지 않은데 이게 너무 닳고 그러니까 좀 시큰둥해졌다. 그러다가 얼마 전 유니클로 매대에 벨트가 9900원에 놓여있길래 두 개를 구입했다.


우선 위 사진의 가운데 개리슨 벨트. 이탈리안 레더 + 개리슨 벨트라고 하면 무식하고 튼튼하고 그런 게 떠오르지만 유니클로 개리슨 벨트는 유니클로 라이프웨어가 가는 길과 마찬가지로 외형은 복각하고 내부는 극히 편안한 사용감(=소재의 절약)을 확보하는 방향을 택하고 있다. 브라스 부분은 뭔가 얄쌍하고 몸통 가죽도 뭔가 얄쌍하다. 두 개를 합쳐 다시 압축해 19800원짜리를 내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이건 할인가 기준이고 원래 3만원 정도 하니까 6만원 까지는 괜찮을 거 같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개리슨 벨트는 여차하면 브라스 부분으로 적군의 머리를 내려친다든가 하는 무기로 쓸 수도 있도록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유니클로 개리슨은 무기로 쓰면 안된다. 저 따위 거에 맞아봐야 화만 더 나게 할 거다. 혹시 가죽을 이용해 목을 조른다든가, 포승줄로 쓴다든가 이런 것도 불가능할 거 같다. 그 전에 끊어질 게 확실하다. 평화를 사랑하는 유니클로의 열망이 반영된 걸 수도 있다. 어쨌든 대신 가볍고 부드럽다. 오래 쓸 게 아니라면 그 부드러움과 편안함에 더 높은 점수를 줄 수도 있다. 언제 외계인과 마주쳐 싸우게 될 지 알 수도 없는데 쓸데없이 무겁고 두꺼운 걸 그때를 기다리며 계속 쓰는 것도 피곤한 일이다.


그리고 맨 오른쪽. 유니클로의 이름을 따르자면 스트레치 테이프 벨트다. 개리슨은 청바지에, 스트레치는 그 외의 다른 바지에 사용하려고 구입했다. 양쪽 끝은 가죽이고 가운데는 폴리에스터다. 이 벨트는, 대안이 딱히 없고 생각하기도 싫어서 구입했지만 이해가 잘 안가는 게 스트레치라는 점이다. 벨트가 왜 늘어나야 하는가 이걸 잘 모르겠다. 


물론 모든 바지를 츄리닝화 하려는 열망의 반영일 수도 있다. 그리고 사실 트래디셔널 제품 파는 곳에서도 보면 코튼 위빙보다 스트레치 혼방 벨트가 보통은 약간 더 비싼 취급을 받고 있는 거 같긴 하다. 그런 점에서 벨트는 고정축이므로 늘어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은 나만의 소수의견일 수도 있다. 아무튼 이 벨트도 가죽 부분은 매우 얄쌍하되 부드럽다. 


아무튼 둘 다 오래갈 거 같지는 않지만 두 개를 돌아가면서 쓰고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는 오래갈 지도 모른다. 그리고 둘 다 생긴 모양에 있어서는 그냥 클래시컬한 벨트의 질서를 잘 따르고 있다. 이 둘이 수명을 다할 때 까지는 벨트에 대한 실험 정신이 다시 생겨나길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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