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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쨋든 하루는 지나간다. 오늘 하루 잘 살았든 못 살았든, 100억을 벌었든 사기를 당했든, FTA가 통과되었든 아는 사람이 땅을 샀든, 입대 1일차든 전역 1일차든, 내일이 너무 기다려지든 다시는 깨어나지 않기를 바라든 하루는 지나간다. 아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야속하기도 하고, 지겹기도 하다.
그런 하루를 끝내는 행동적 요식 행위를 하나쯤 가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는 선배 한 명은 책을 읽었다. 코가 삐툴어지거나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수준으로 취해서도, 용돈이 없어서 며칠 노가다를 뛰면서도 아무거나 집어들고 책을 읽었다. 그런 게 기억이 날 리가 없다. 하지만 요식 행위란 원래 그런 거다. 의미가 없을 수록, 복잡다단할 수록 우월하다.
옷 솔질은 괜찮은 행위다. 가장 좋은 점은 의식적인 하루의 끝을 침대 속에 들어가기 전이 아니라 집에 들어오자 마자, 혹은 샤워를 마치자 마자로 바꿔놓는 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옷 솔질을 마친 시점과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의 시간은 빈 시간, 이 된다. 물론 이런 인지적 변형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어지간히 오랫동안 수행을 거쳐야 한다. 자연스러워 지는 데 가장 필요한 건 반복과 시간이다.
더구나 옷 솔질은 하루를 끝냈다는 편안함을 줌과 동시에 옷의 수명 연장이라든가, 옷 걸이의 먼지 방지 같은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
사진은 약간 연출.
옷 솔은 돼지나 맷돼지 털로 만든게 좋다. 보급형이라면 딱히 비싸지는 않다. 지마켓에서 파는 장미 옷솔(서울 브러쉬)은 5,000원이고 10,000원 쯤 하는 웨신도 괜찮다. 무인양품에서도 나온다. 샤워용이건 빗용이건 브러쉬를 만드는 회사라면 대부분 만든다. 이왕이면 좋은 걸 가지고 쓰고 싶다면 켄트 브러쉬도 좋다. 제일 좋아봐야 60파운드 쯤이다.
다만 손잡이가 플라스틱으로 된 제품들도 나오는 데 그것만은 나무로 된 걸 추천한다.
켄트 브러쉬에 대해서는 예전에 쓴 이야기가 있다. 영국에 있는 아주 오래된 회사다.
http://macrostar.egloos.com/4177203
옷을 아끼기 위해서든 아니면 그저 요식 행위이든 옷 솔질에 딱히 특별한 요령이 있는 건 아니다. 코트나 자켓이나 울이나 면으로 된 거라면 옷 걸이에 걸어놓고 옷 결 따라 정성스럽게 문지르면 된다. 괜히 힘 줄 필요는 없지만 이왕 하는 거 구석 구석 하는 게 좋다.
고어 텍스나 가죽 옷에는 사용해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솔질 따위는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비닐 옷도 문질러봐야 별 소용 없고 들고 나가서 탈탈 터는 게 더 효과적이다. 물론 이건 솔질처럼 뭔가 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은 덜하다.
옷 솔은 비싸진 않지만 있으면 꽤 유용하다는 점에서 선물용으로도 괜찮다. 자고로 선물은 아무짝에도 쓸데 없는 고급품이 가장 좋고, 그 다음은 있으면 좋은데 제 손으로는 사지 않을 거 같은 것들이 아닐까 싶다.
그닥 즐거운 일은 없었지만, 그럭저럭 오늘 하루도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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