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들어 구립 수영장 등록에 성공해 수영을 배우고 있다. 일주일에 이틀 나가는 거라 진도가 더디긴 한데 아무튼 힘들어. 새로운 운동을 한다는 건 새로운 옷, 장비를 만나는 일이다. 등산 같은 건 뭐 말할 것도 없고 달리기만 해도 러닝화, 러닝탑, 러닝쇼츠, 겨울에 뭐 입지, 스마트폰은 어디에 두지, 바람 불면 머리 아픈데, 손 시린 건 어쩌지, 양말은 뭐 없나 등등 범 스포츠 용품 중 약간 달리기로 치우쳐 있는 것부터 시작해 올림픽 나가는 사람용까지 다양한 제품이 존재한다.
수영의 경우 수영복, 수모, 수경이라는 범 스포츠 용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필수 제품군이 존재하기 때문에 아무튼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도 이거야 익숙한 물품이고 수영 초보 강습반 답게 단색 수영복에 단색 수모를 쓰고 어푸어푸. 아무튼 일을 마치고 도서관에서 나와 지하철을 타고 수영장으로 가고, 끝나고 버스타고 집까지 오는 데도 거리가 좀 되기 때문에 물품 최소화 전략이 필요했고 그걸 위해 필요한 걸 뒤적거리다가 습식 타올이라는 신문물을 만나게 되었다. 수영하는 이들이 많이 쓴다고 해서 찾아 나선 건데 실제 쓰는 사람을 아직 본 적은 없는 듯. 사실 남 볼 틈이 없어서 쓰는 데 모르는 걸 수도 있고.
그런 이유로 1+1이길래 습식 타올이라는 걸 샀다. 습식 타올이라는 걸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도 있을테니 간단히 설명해 보자면 상당히 이상한 물건이다. 일단 완전히 마르면 딱딱해진다. 그러므로 물에 적신 다음 짜내서 써야 한다. 이게 상당히 뻑뻑한 편이라 평소 면 수건 쓰듯 문지르면 안되고 톡톡 붙이는 식으로 쓴다. 그러다 짜내고 또 쓰고. 이렇게 다 쓴 다음 집에 오면 물에 잘 행궈서 다시 짜낸 다음에 보관한다.
습식 타올은 보통 위 사진 같은 통을 준다. 그러면 짜낸 상태 = 약간 젖은 상태로 저기에 넣어 둔다. 저걸 다시 수영장에 들고 가서 적신 다음에 짜내서 쓴다. 한동안 쓰지 않을 때는 통 뚜껑을 열어 둔 채 보관한다. 완전히 말라버리면 접히지도 않기 때문에 넣을 수가 없다. 심지어 접으려고 하면 부러짐. 저 통을 몇 번 들고다녔는데 너무 불편하고 덩치만 커서 요새는 비닐로 된 슬라이드 집락에 넣어 다니고 있다.
아무튼 이 괴상한 물건을 보면서 대체 저따위 사용법이 있는 물건을 누가 개발했는가, 역사가 어떻게 되는건가 궁금해져서 찾아보게 되었다. 일단 일본에서는 세무 타올(セームタオル)이라고 하는 거 같고 미국에서는 Chamois Towel이라고 하는 듯 하다. Shammy라고도 하는데 사람 이름이다. 또는 아쿠아 타올이라고도 한다. 한국은 아쿠아 타올에서 온 듯한 이름인 습식 타올이다. 항상 젖어있어야 한다는 걸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게 알아듣기는 쉬운 거 같다. PVA 타올을 검색해도 나온다.
유래를 검색해 보면 원래 샤모아 가죽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알프스 지역에 사는 이런 산양임... 샤모아 가죽으로 만든 타올을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정도에 노르웨이와 그 근처 나라 다이버들이 사용했다고 한다. 가죽 타올이라니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물 흡수를 잘 하기 때문에 빠르게 몸을 건조해 체온을 올려야 하는 수영인, 다이버들이 좋아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이걸 1970년대 초반 일본에서 PVA 소재를 이용한 제품을 개발했다. 그럴 듯한 이야기인데 확실하진 않고 누구가 개발한 건지도 명확하지 않다. 국제적으로 퍼진 건 1977년 스웨덴 컵에 유럽 선수들이 들고 온 건데 노르웨이 팀이 이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섀미 리 박사에게 전해줬고 이걸 보고 사업성이 있다고 생각해 섀미 스포츠 타올을 내놨다고 한다. 이후 대중화된다.
이런 스토리라면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노르웨이 바닷가를 안 가봐서 모르겠지만 얼마 전 본 방송에 의하면 한국 거제도 겨울 바다 온도가 노르웨이 여름 바다 온도와 비슷하다고 한다. 그 정도로 추운 곳에서는 물기를 빨리 제거해야 한다. 특히 다이빙을 하는 사람이라면 물기에 젖은 발바닥과 다이빙대 같은 게 위험할 수 있으니 그거 닦는 데도 좋을 거 같다. 써본 바에 의하면 물기 없애는 데는 꽤 탁월하기 때문에 물을 쏟거나 했을 때 치우는 데 좋을 거 같았다. 이런 물건을 가지고 불편하지만 몸도 머리도 말릴 수는 있으니 그냥 쓰자라는 식으로 흘러갔을 거 같다.
섀미 리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올림픽 금메달, 이비인후과 의사 등 여러 경력이 있다. 한국전 때는 미국 육군의무대 소령으로 한국전에 참전 예정이었는데 올림픽 출전으로 미뤄졌고 이후 1953년부터 1955년까지 한국에 있던 미국 육군 복무대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위키피디아(링크)와 지금은 슈퍼 쿨 프로덕츠가 된 듯한 브랜드의 창립자 섀미 리 이야기는 여기(링크)를 참고, 경력이 매우 굉장하신 분이다. 1988 올림픽 때 다이빙으로 유명했던 루가니스도 이분의 제자라고 한다. 아무튼 뭔가 괴상한 물건을 추적하다가 이승만 친구라는 분의 아들까지 나왔다. 역시 범상한 물건은 아니었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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